칼리굴라 썸네일형 리스트형 제정 시대의 로마 두번째 삼두정치 카이사르의 사후 빠르게 정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그의 가장 강력한 측근이었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였습니다. 그는 공화파들에 대한 복수로 정국이 또 혼란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을 마케도니아와 시리아 속주로 파견하는 한편, 카이사르를 따르던 군인들의 분노를 진정시키며 사태를 적절히 수습해 민심을 얻었습니다. 물론 내심 자신이 카이사르의 후계자로서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을 차지하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요. 하지만 막상 카이사르의 유서가 공개되고 나니 그 내용이 그의 예상과 너무 달랐습니다. 카이사르가 지명한 후계자는 그의 질녀의 아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였습니다. 모두가 놀랄만한 일이었죠. 잘 알려지지 않은, 내세울만한 것도 없는 청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나마 카이사르에게 ..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