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루터 썸네일형 리스트형 종교개혁 아비뇽 유수와 서방 교회의 대분열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서유럽 세계에서는 이미 교황청의 힘이 세속의 권력에게 제압되며 점차 힘을 잃어가던 시기였습니다. 백년 전쟁의 과정에서 각국의 군주들은 영토를 둘러싼 잦은 전쟁을 거치며 군대를 크게 강화시켰고 그 과정에서 왕권이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반면 한때 강력한 권력을 누리던 귀족들은 전쟁이 거듭되는 동안에 점차 수가 줄어들면서 힘을 잃었구요. 살아남은 이들도 이제는 왕권을 뒷받침해주는 신흥 관료 계층과 경쟁해야 했습니다. 또, 각국의 민중들에게 조금씩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것도 예전과는 좀 달라진 점이었죠. 이렇게 세속 군주들의 권한이 강화되니 상대적으로 교황의 권력은 위축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황권이 몰락하던 당시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는데.. 더보기 합스부르크 왕조의 전성기와 오스만튀르크 유럽의 절반을 가졌던 카를 5세 십자군 원정의 실패 이후 줄곧 쇠퇴의 길을 걸었던 교황권은 백년 전쟁을 거치며 점차 강화되어가던 세속 군주의 권한에 밀려 조금씩 힘을 잃어갔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교회는 자정능력과 개혁의지를 잃어갔죠. 콘스탄츠 공의회에 참석한 성직자들은 예전의 수도원 운동이 타락했던 교회를 바로잡아 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그들이 다시 개혁운동의 중심이 되어주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수도원도 예전의 수도원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는 종교회의 즉 공의회를 상설화하고 자정 노력을 계속해기로 했지만 그냥 공허한 결심이었죠. 이렇게 교회의 개혁이 딱히 효과를 내지 못하자, 각국의 세속군주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야 수많은 봉건 영주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통치..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