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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2세

근대의 서막 영토와 주권 르네상스와 신항로 개척, 종교개혁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며 중세의 종말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유럽의 각 국가들은 근대적인 의미의 영토와 주권을 가진 나라로 변화하며, 강력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영토를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중세 시대 동안 봉건 영주의 직할지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경계가 흐릿한 중세의 영토국가와는 다른 새로운 영토 개념이 생겨났는데요. 중세의 봉건제에서는 영토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주민들에 대한 봉건 영주의 주권 또한 불분명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제 각 국가간 국경이 확실해지고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국가의 개념이 보다 확실하게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사실, 중세 시대에도 자신의 영지를 거느린 귀족들의 전.. 더보기
합스부르크 왕조의 전성기와 오스만튀르크 유럽의 절반을 가졌던 카를 5세 십자군 원정의 실패 이후 줄곧 쇠퇴의 길을 걸었던 교황권은 백년 전쟁을 거치며 점차 강화되어가던 세속 군주의 권한에 밀려 조금씩 힘을 잃어갔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교회는 자정능력과 개혁의지를 잃어갔죠. 콘스탄츠 공의회에 참석한 성직자들은 예전의 수도원 운동이 타락했던 교회를 바로잡아 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그들이 다시 개혁운동의 중심이 되어주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수도원도 예전의 수도원이 아니었습니다. 교회는 종교회의 즉 공의회를 상설화하고 자정 노력을 계속해기로 했지만 그냥 공허한 결심이었죠. 이렇게 교회의 개혁이 딱히 효과를 내지 못하자, 각국의 세속군주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야 수많은 봉건 영주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통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