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족은 누구일까?
게르만족은 하나의 민족이 아니며 로마 주변에 살던 여러 민족들을 통합해서 부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게르만족은 로마의 쇠락기에 단일한 제국을 형성하지 못하고 여러 나라로 나뉜 상태로 존재했습니다. 이들의 이동은 단일한 사건이 아닌 수백 년에 걸쳐서 벌어진 현상이었고 그 과정에서 로마로부터 아리우스파 기독교와 라틴 문자를 전파받아 로마로부터 이어진 서양 문명의 전통을 이어나갔습니다.
게르만족은 원래 로마의 속주에 살았지만 로마의 쇠퇴기에 들어서 각 속주들은 거의 독립 왕국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훈족의 침략은 로마 밖에 거주하던 게르만족의 이동을 야기했고 이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이주한 곳에 로마 문명의 일부를 이어받아 나라를 이룬 것이었습니다.
원래 도나우강 연안에 살던 서고트족은 이베리아 반도로 이동해 서고트왕국을 세우고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한편, 엘베 강 유역이 본거지였던 반달족은 북아프리카로 이동했습니다. 흑해 연안이 고향인 동고트족은 이탈리아 반도로 들어가 서로마가 있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벨기에와 북독일 지역의 앵글족, 색슨족, 유트족은 브리타니아로 건너가 초기 영국의 작은 왕국들을 세웠습니다. 6세기에는 엘베 강 유역 반달족과 같은 곳에 살던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로 들어왔습니다. 한편 중세 초기 북유럽과 러시아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던 스킨디나비아족은 로마 멸망 당시까지는 북유럽 지역을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프랑크 왕국과 메로빙거 왕조
속주 중에서 가장 로마화가 많이 진행된 곳은 갈리아였습니다. 따라서 갈리아는 로마가 멸망하고난 후 문명의 중심지로 부상했습니다. 갈리아 북부에는 부르고뉴족과 프랑크족이 각각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하지만 남부는 아직 로마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로마가 멸망되면서 다른 게르만족이 쉽게 진입하지 못하고 공백 지역이 되었습니다. 갈리아의 서남부인 아키텐 지역에는 이베리아 반도로 빠져나가고 남은 서고트족이 툴루즈 왕국을 세웠지만 아직까지는 세력이 미약했습니다. 그러던 중 갈리아 북부에서는 훈족의 공격으로 부르고뉴 왕국이 무너지고 프랑크 왕국만 남았습니다. 갈리아 북부가 점차 중심지로 부상하고 결정적으로 클로비스가 등장하며 갈리아는 통일될 조짐을 보였습니다.
클로비스는 로마의 장군인 시아그리우스와 알라만족을 격파하고 갈리아 중부, 알프스 이북까지의 상당한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남은 서고트족의 툴루즈 왕국은 초기의 프랑크 왕국에 비해 강성했으므로 쉽게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클로비스는 496년 로마카톨릭으로 개종하고 프랑크 왕국은 아리우스파가 아닌 로마카톨릭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게르만족의 지배계층은 거의 모두 아리우스파 크리스트교를 신봉했지만 갈리아 서남부의 아키텐 원주민들은 로마의 영향으로 로마 카톨릭신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클로비스는 종교를 이용해 원주민과 서고트족 지배계층을 분리하며 아키텐에서 원주민들의 지지를 얻어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전통을 계승한 프랑크 왕국은 이처럼 다른 게르만족의 초기 왕국들과는 약간 이질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고 그래서 다른 왕국들과 달리 오래 존속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아리우스파가 아닌 로마카톨릭을 택한 프랑크 왕국은 로마 교황청과도 깊은 관계를 형성하며 서로의 세력을 성장시켰습니다. 지금도 클로비스는 현대 프랑스에서 프랑스 역사상 첫번째 왕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비잔티움
동로마는 서유럽의 다른 왕국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가장 발달한 문명국인 것은 분명했습니다. 서유럽의 왕국들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갈 때 동로마에서는 유스티니아누스가 등장해 동로마를 부흥시켰습니다. 그는 법령을 정비해 법전을 새롭게 편찬하고 전제군주제를 강화했습니다. 또한 벨리사리우스를 사령관으로 삼아 훈족 출신의 용병들을 이용해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을 정복하고 북진해서 동고트족을 격파하며 시칠리아와 로마 본토의 나폴리까지 진격해 라벤나에 속주를 설치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에스파냐도 일부 획득하지만, 그의 사후에 영토는 다시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예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탈리아에는 롬바르드족이 침입해 왕국을 세우고, 북쪽에서는 아바르족, 슬라브족이, 동쪽에서는 사산 조 페르시아가 이집트와 시리아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비잔티움은 다시는 서쪽으로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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