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제 시대 이후의 황제들
오현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오현제 중 유일하게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대의 양자 상속 관습을 깨고 친자인 코모두스에게 제위를 세습했습니다. 하지만 코모두스는 오현제 시대의 평화를 깨고 공포정치로 사회불안과 내전을 초래했습니다. 코모두스의 사후 정국은 한 해 동안 무려 다섯 명의 황제가 즉위하는 급격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코모두스 시기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제위경쟁에서 승리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아프리카 속주 출신의 황제로 친위대를 개편하고 동쪽의 파르티아, 서쪽의 브리타니아의 반란을 제압하며 대외적인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 로마의 군사력은 이미 쇠퇴하던 중이었고, 반대로 칼레도니아의 스코트족과 픽트족은 하드리아누스 장성을 부수고 남하했습니다. 세베루스는 브리타니아 전체를 정복하려고 했지만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요크에서 전사했습니다.
세베루스의 아들인 카라칼라는 동생 게타와 함께 공동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않아 그를 제거하고 단독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의심이 많고 편집증적인 성격의 그는 비밀경찰조직을 만들어 다시 공포정치를 실시했지만, 한편으로는 로마의 모든 속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여 세수를 확대하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로마 본토와 속주민 사이의 지위는 법적으로 동등해졌습니다.
이후 로마의 황제들은 재위기간이 짧고 권력이 불안정해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카라칼라의 후임인 마크리누스는 1년, 헬리오가발루스는 4년을 재위했고, 이후 50년 동안 무려 26명의 황제가 즉위했습니다.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자, 로마는 급속히 쇠락했습니다. 서민들은 갈수록 가난해지고 무역은 위축되고 농토가 황폐화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전염병이 자주 창궐하고 국방력이 약해지면서 이민족들의 침입도 잦아졌습니다.
외적의 침입은 넓은 영토를 가진 로마에게 있어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동쪽에서는 새로운 강력한 세력이 부상하며 로마를 위협했습니다. 사산 조 페르시아가 오랫동안 로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파르티아를 멸망시키며 지금의 이란 지역의 새로운 패자가 된 것입니다. 한편 이 즈음에 루마니아에서 발흥 한 고트족은 257년 소아시아 북부를 점령하면서 로마의 중요한 육로를 봉쇄했습니다. 이미 군사력이 약화되기 시작한 로마는 변방에서 외적들의 출몰이 잦아지자 결국 변방의 속주가 자체적으로 군대를 보유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이 정책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거두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오히려 로마 제국의 약화를 가져왔습니다. 일리리쿰 출신의 황제들은 속주군을 이용해 고트족을 몰아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전통의 로마 군단은 붕괴되고 속주의 군대를 거느린 장군들은 군벌화되었습니다.
분열된 로마
284년에 즉위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2년 뒤 로마의 영토를 넷으로 분할해 2명의 정제와 부제가 다스리는 테트라르키아, 즉 사두정치를 수립했습니다. 행정력의 약화로 광대한 영토를 다스릴 수 없게 되자 시행한 궁여지책이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우선 로마제국을 동서로 분할했습니다. 소아시아의 니코메디아를 수도로 소아시아와 이집트는 동방 정제인 자신이 다스리고, 부제인 갈레리우스는 판노니아의 시르미움에서 발칸반도 지역을 통치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서쪽은 서방 정제인 막시미아누스가 지금의 밀라노인 메디올라눔을 수도로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다스리고, 부제인 콘스탄티우스는 갈리아의 트리어에서 에스파냐, 갈리아, 브리타니아를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테트라르키아는 권력을 분할함으로써 각자의 권력을 집중시키려는 제도였습니다. 이 제도로 권력은 안정되었지만 각각의 정제와 부제가 세력다툼을 할 수 있는 필연적인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동방 정제가 가장 높인 서열임을 공표하고 동양식 전제주의정을 도입했습니다. 또한 의장과 예식도 페르시아 풍으로 바꾸고 행정구역도 개편했습니다. 한편,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군사개혁을 통해 속주 총독의 군사지휘권을 박탈하면서 중앙군을 조직하고 기병대를 육성했습니다. 원래 로마 내에는 군대가 주둔할 수 없었지만 이후에는 중앙군이 상주하다가 변방에 문제가 생기면 기병을 파견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군사개혁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군사력 증강을 위해 기술자들을 징발하고 변방의 군인들은 대를 이어 군인으로 복무시켰습니다. 콜로나투스도 강화되어 소작인들은 무거운 세금을 부담하면서 이동의 자유도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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